세계수준의 전문성 확보가 곧 경쟁력,
전문성 없는 영어회화 능력은 다국적 기업 콜센터로 가는 지름길
서대웅 美인텔사 기술제조총괄 연구원 공학박사
새 정부 인수위의 영어몰입교육이 논란을 빚고 있다. 내가 보기에 영어몰입교육의 취지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되는 것 같다. 하나는 기러기 아빠로 대변되는 조기유학 열풍과 교육양극화의 해소다. 그런데 조기유학은, 개선되지 않는 입시지옥, 획일적인 암기식 교육, 국내 기업 취직에도 도움이 안 되는 국내 대학들의 경쟁력, 줄어드는 직업 안정성, 불확실한 미래에 미국 대학 졸업장이라도 붙들려는 학부모들의 몸부림이 진정한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국가경쟁력 강화일 것이다. 영어능력 향상이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킨다면, 아마 이는 다국적 기업들의 한국 투자나 한국산 제품의 구매가 한국인의 향상된 영어능력으로 인해 증가할 것이라는 시나리오에 바탕을 둔 것일 수 있겠다.
한번 필자가 일하는 회사를 보자. 임직원 중 40%가 미국 밖에서 일하는 외국인이고, 미국 내 임직원도 상당수가 필자 같은 외국인 노동자인 다국적 기업이다. 회사 회의실에선 세계 각국 출신 기술자들이 발표하고, 토론하고, 때로는 언성을 높이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편다. 여기엔 원어민 수준의 영어부터 인도의 시장에서 쓰이는 영어까지 다양한 영어가 혼용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이 환경에서 영어발음의 유려함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아이디어 창출능력과 문제 분석 및 해결 능력, 계획 실행능력,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능력만이 중요할 뿐이다. 글로벌시대 최대 경쟁력은 해당 분야의 실력임을 필자는 매일 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
우리 회사는 수많은 일본 업체로부터 장비와 재료를 공동개발하고 천문학적인 구매를 하고 있다. 이들 업체와의 회의엔 보통 통역이 배석하는데, 이유는 일본 기술자들과 영어로 소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술력, 품질, 일 처리의 깔끔함, 고객지상주의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바로 이것이 일본 업체들, 나아가 일본의 경쟁력이다.
21세기 글로벌한 인재에게 필요한 능력은 자기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전문성, 적극성, 조직 적응력, 리더십, 그리고 자신의 분야에서 각국의 전문가들과 난상토론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지 원어민의 발음을 흉내 내는 생활영어 수준의 영어가 아니다. 인도에 다국적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건 세계수준의 이공계 인력을 낮은 인건비로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재들이 없다면 인도에는 미국 소비자들의 불평을 접수하는 '콜 센터(call center)'만 남게 될 것이다. 내용 없는 영어회화 능력은 다국적 기업의 콜센터로 전락하는 지름길이다.
새 정부가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Good-to-have(하면 좋은 일/영어능력향상)'에 매달리다 'Must-have(꼭 해야 할 일/우수 이공계 인력 양성, 정부조직 부정부패 척결, 간소한 행정절차 등)'를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란다.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05/2008020501325.html